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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 이야기

[2020년 회고] 초심의 공중부양

"초심의 공중부양"

 

글의 제목은 이외수 작가의 '글쓰기의 공중부양'이라는 책 제목을. 글의 공중부양은 '글이 떴다', 즉 유명해졌다는 말이다. 아쉽게도 내 공중부양은 그런 의미가 아니다. 마음이 붕 떠버렸다는 말이다.

 

나는 스타트업의 개발자다. 입사 초기, 신입답게 무엇이든 배우고 개발하겠다는 열정에 차 있었다. 개발 스터디도 운영하고, 오픈소스 행사에 참여하고, 개인 프로젝트 진행, 개발 블로그 포스팅 등 개발이 즐거워서 여러 가지 활동을 했다. 난 개발을 좋아하고 내 일이 즐거웠다. 하지만 일에서의 재미는 오래가지 않았다.

 

회사에서 개발하는 서비스에도 애정이 생기지 않았다. 회의는 자주 하지만 팀원의 의견이 서비스에 반영되는 일은 드물었다. 그래서 왜 이 기능을 개발해야 하는지도 몰랐고, 스스로 그저 경영진 명령에 따라 코드를 짜는 기계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의 아이를 데려다가 키우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스스로 '나는 왜 처음과 달라졌을까? 내가 개발자가 된 이유는 뭐였을까?'라는 질문을 던져보았다.

 

 

"내가 개발자가 된 이유"

 

나는 대학생 때부터 창업에 관심이 많았다. 창업 동아리도 만들고, 창업 아이디어 대회나 메이커톤에 나가 수상도 더러 했었다. 아쉬운 것은 언제나 아이디어에 그친다는 것이었다. 내 전공은 컴퓨터 공학이 아니다. 그래도 프로그래밍을 배워 창업했다는 타대학생에 대한 기사를 보면서 나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 어느 스타트업의 마케팅 인턴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곳에서 나는 SQL과 Python을 배웠다. 처음으로 스크레이핑을 해보고, 간단한 카드 게임도 만들면서 프로그래밍이 재밌다고 느꼈다. 내가 생각하는 것을 프로그램으로 구현할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나는 개발을 하면 이 일을 정말 재밌게 할 것이라 생각했다. 

 

원하는 것을 만들고 싶었고, 그래서 개발자가 되었다.

 

 

 

"초심 잡기"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치히로는 이름을 빼앗기고 센이라는 이름으로 유곽에서 일하게 된다. 이름을 잊어버리면 치히로는 다시 원래대로 돌아갈 수 없다. 나도 회사에서 개발자라는 직업을 갖고 있지만, 내 본래 모습은 '만드는 사람'이다. 그걸 잊어버리면 나는 앞으로도 계속 남의 서비스만을 만들게 될 것이다.

 

나는 공중부양한 초심을 잡기 위해 노력했다. 먼저 퇴근하고 뭘 해야 할 지 몰라 쓸데없이 허비했던 시간을 반성했다. 창업 아이디어를 생각하고 회사 동료와 작은 서비스를 만들기 시작했다. 아이디어를 짜는 것도, 주변 사람들에게 인터뷰하는 것도, 그리고 우리의 아이디어를 토대로 개발을 하는 것도 재밌었다. 

 

최근 이 서비스는 답보 상태에 있어 완성될 것 같지는 않다. 그래도 나는 내가 원래 개발자가 되려고 했던 이유를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리고 오랜만에 새로운 아이디어로 인해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도 느껴봤다.

(+ 2020.01.27 금요일 추가, 이 아이디어를 피봇하기로 했다. 기획은 일단 간단하게 했고, 지금은 피그마로 와이어프레임을 짜고 있다.)

 

올해는 내 진짜 이름을 잊지 않으려 한다.

될 수 있다면 아주 작은 것이라도 만들어보고 싶다.

 

안녕, 202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