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단상

영화와 애니메이션으로 말하는 '생명체로서의 컴퓨터'

"생명체로서의 컴퓨터"

 

'발달된 로봇을 인간으로 봐야하는가 기계로 봐야하는가'는 우리가 자주 접하는 SF장르물의 주제이다. 인공지능, 가상현실, 생명공학 등 기술이 발달하면서 인간과 기계의 경계가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나는 최근에 재밌는 상상을 한 적이 있다. 이 세상이 사실 프로그래밍 된 세상이고 내가 해킹해서 코드를 마음대로 바꾸는 것이다. 이 상상은 모든 생명체가 소프트웨어처럼 알고리즘으로 이루어져있다는 데서 비롯되었다.

 

 

 

"01, GTCA"

 

blade runner, 2017 / gattaca, 1997

 

생명체는 부모 세대로부터 유전적인 속성을 물려받고, 세대를 거듭할 수록 진화한다. 생명체의 DNA는 G,T,C,A 네 가지 염기로 코딩된다. 마치 프로그램이 0과 1로 이루어지듯이 인간도 GTCA의 배열에 따라 결정된다. 인공지능 홀로그램인 조이와 인간 케이가 대화하는 장면을 보면 인간과 로봇의 경계가 희미해지는 느낌이 든다.

 

조이: Data makes the man. A and C and T and G. The alphabet of you, all from four symbols. I'm only two... one and zero. (데이터는 인간을 만들죠. A, C, T, G. 당신의 알파벳, 모든 것이 이 네 가지 기호에서 나와요. 저는 두 가지 밖에 없어요. 0과 1.)
케이: Half as much, but twice as elegant, sweetheart. (반이지만, 두 배 더 우아하지.)

 

 

또한, 유전자를 분석하고 우리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통제하는 것은 마치 해커가 프로그램을 해킹하는 것과도 비슷하다. Gattaca라는 영화에서는 미래 사회에서 인간이 유전자 조작으로 우월한 유전자를 만들고, 이런 조작을 받지 않고 태어난 사람은 부적격자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 정도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현재도 게놈지도를 만들어 DNA 복제, 질병 예방(암 게놈 지도)을 하는 등 유전 공학은 계속 발전하고 있다. 

 

 

 

"의식에 대하여"

 

영화 '매트릭스', '제 5원소', 게임 '사이버펑크2077' 등의 여러 SF 장르물들의 모티브가 된 작품이 있다. 바로 시로 마사무네의 만화책 '공각기동대'이다. 공각기동대의 주인공 쿠사나기 소령은 전신 의체화하여 온몸을 기계로 바꾼다. 공각기동대 극장판, 영화의 제목인 'ghost in the shell'은 쿠사나기 소령의 대사로부터 나온다. 자신의 몸이 기계로 이루어진 껍데기일 뿐이고 자신은 그 안에 살고 있는 유령일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시로 마사무네, '공각기동대' / 애니메이션, 영화, 게임 등 많은 스핀오프가 있다.

 

사실 내 진짜 몸은 옛날에 죽었고 지금의 나는 '나는 쿠사나기 모토코다'라고 생각하는 의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할 때도 있어.

 

지금도 신체의 일부분을 기계로 대신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럼 전신을 기계로 바꾼다면 그 사람은 기계일까, 인간일까. 기계와 인간 둘 다 기계라는 껍데기에 있다. 하지만 이 때도 인간과 기계가 같냐고 물으면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에게는 '의식'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의지가 없는 로봇은 생명체가 아니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의식을 생명체의 근거로 본다면 말이다.

 

하지만 리처드 파인만의 '이기적인 유전자'에 따르면, 인간은 더 오래 살아남고 싶어하고 더 많이 번식하고 싶은 유전자의 그릇일 뿐이다. 인간은 다른 생명체처럼 살아있는 동안 많이 번식하고, 자연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행동한다. 영혼에서 우러나온 선한 행동도 사실은 유전적 목적을 이루기 위해 프로그래밍된 것일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다면 인간과 로봇이 다르다고 볼 수 있을까?

 

 

 

"도구에서 생명체로"

 

컴퓨터는 도구로서 존재 의의를 가지고 태어났다. 그리고 생명체와 같이 인간에 의해 계속 진화하여 지금은 인공지능이라는 단계까지 와 있다. 도구로서의 컴퓨터는 인간의 삶을 유용하고 편리하게 만들어준다. 하지만 법도 국가도 없는 자연 상태에서 컴퓨터와 인간을 놓고본다면, 지능적으로나 물리적으로나 훨씬 우월한 컴퓨터는 인간에게 위협적이다. 

 

컴퓨터가 주체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갖기 시작하면 인간을 '협력해야할 존재'로 볼 지 '제거해야할 존재'로 볼 지 모른다. 공생 관계가 되거나 천적이 될 수도 있다. 먹이 사슬의 꼭대기에서 밀려나 로봇에게 생체 에너지 또는 노동력을 착취 당하면서 살아갈지도 모른다.

 

이런 리스크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인공지능은 계속 개발되고 있다. 국가적으로 그리고 세계적으로 인공지능 개발을 규제하는 샌드박스가 필요하다. SF적 상상력에서 나오는 위험의 측면 뿐만 아니라 보안 측면에서도 그렇다. 그러나 인공지능은 핵이 그렇듯 '위험하지만 개발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기술'과도 같다. 우리가 개발하지 않으면 다른 곳에서 개발한다. 기계가 아직 도구인 시점에서는 괜찮지만 후에는 어떻게 될 지 모른다.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인공지능이 우리에게 어떤 존재가 될 지 지켜보는 수 밖에 없다.

'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유튜브 디톡스(Youtube Detox)  (0) 2021.02.12